210620_설교정리_소망, 하늘에 속한 사람
○ 공동기도
① 코로나 백신이 잘 공급되게 하시고, 백신의 부작용으로부터 건강과 안전을 지켜주옵소서
② 각 선교지마다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시고, 복음의 소망이 심겨지게 하옵소서
③ 모든 성도들이 한 주간 하늘 소망을 가지고 평안과 은혜를 누리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 말씀전문
[베드로전서 1장 1절~4절]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 설교요약
영화 타이타닉을 본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한 것은, 비극적인 사건 속에서도 아름다운 영웅들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죽어간 사람, 마지막까지 키를 놓지 않고 배와 운명을 함께 한 캡틴 스미스 함장, 배가 잠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연주를 멈추지 않은 악사 월레스 하틀러 등 수많은 영웅들이 있어 우리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영화 속의 월레스 하틀러는 실존 인물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 배에 승선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배가 침몰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연주한 곡은 찬송가였습니다. 운명을 달리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그의 소망이었던 복음을 전하다 갔습니다. 운명을 달리하는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진짜 소망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누군가가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너무나 쉽게 절망하고 좀처럼 희망을 갖기가 어려운 이 코로나 시기에 딱 맞는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표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희망과 소망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럼 믿음도, 사랑도 잊어버리며 살아가는 이 시기에 우리가 잃어버린 소망의 영성을 회복하려면...
1. 예수님에 대한 산 소망 (A living hope)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베드로전서가 쓰여진 역사적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AD 68년 7월 19일 로마에는 대화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황제였던 네로가 직접 방화를 지시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네로는 그 소문을 잠잠하게 할 희생양을 찾았고,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방화를 했다고 뒤집어 씌워 그리스도인 체포령을 내렸고 붙잡힌 사람들는 피비린내 나는 참수를 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동굴 속으로 또는 로마를 떠나 소아시아 지역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이들을 비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 불렀는데, 비아스포라는 '흩어진 나그네'라는 뜻입니다. 1절에 나오는 흩어진 나그네가 그들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1절).
갑바도기아로 옮긴 유대인들은 갈매기 집과도 같은 동굴 속에 교회를 만들고 예배를 드리면서 그들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들이 그런 참혹한 환경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게 된 것은 그들에게 살아있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소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3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신앙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그들이 그 상황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는 영적인 눈이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영적 눈이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바라보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붙잡고 살아가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산 소망 (A living hope) 입니다.
그동안 오직 믿음만을 붙잡고 살아온 우리, 그런 우리에게 일상을 앗아간 코로나가 닥쳤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지금껏 믿어온 대가가 이것이냐고 원망할 수도 있는 코로나 시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소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산 소망입니다. 어렵고 힘들고 암담하다고, 혹 죽을 소망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합니다. 신갈오거리에서 민속촌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은 항상 꽉 막힙니다. 그것은 그 중간에 있는 로또명당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무려 로또 1등 당첨이 19번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로또에 당첨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패가망신 했다고 합니다. 로또는 죽을 소망인 것입니다. 산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붙잡는 자만이 진정한 소망의 영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2. 복음의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산 소망으로 가진 자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나타나는 것이 복음을 소망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옥중 서신인 골로새서에서 그 새로운 소망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3절입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그는 철저하게 복음에 소망을 두고, 그 복음을 위한 일꾼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3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산 소망이 바로 복음입니다.
바울이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간 것은, 복음이 힘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팍스로마나라고 했습니다. 팍스로마나는 로마식의 평화라는 의미입니다. 평화는 힘으로부터, 권력으로부터, 돈으로부터 온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갈릴리 촌구석으로부터 전해온 복음은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는 힘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힘이 진정한 힘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주눅들어 하지 않고, 그 복음을 전하는 일꾼을 자처했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 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그리고 15절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로마의 지배 하에 있는 로마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복음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는 힘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 밖에 없습니다. 변화 되어야 할 사람들이 교회 안에도 많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돌아가야 할 곳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3. 하늘에 쌓아 둔 하늘의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산 소망을 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또 다른 모습은 하늘에 소망을 둔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4절과 5절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라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또한 본문 4절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구미에 가면 토산보신원이라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구미에서 근무할 때 외지에서 손님이 오면 이곳으로 모시고 가서 대접을 하곤 했습니다. 그곳의 대표적 음식은 꿩탕과 멧돼지탕입니다. 무를 얇게 썰어서 칼칼하게 끓여주는 꿩탕은 옛날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런데 야생성이 강한 이 꿩 사육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이 꿩 사육을 쉽게 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꿩 머리에 썬캡을 씌우면 된다는 것입니다. 사납고 야생적인 꿩이 이 썬캡 떄문에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자 날 수 있다는 것을 잃어버리고 유순해진다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을 바라보며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만 바라보고 삽니다. 오늘도 하늘 소망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소망이 산 소망입니다. 하늘에 재물을 쌓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은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두고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하늘 소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하늘에 소망을 두는 자가 소망의 영성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미지노 겐조의 [감사는 밥이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10세에 뇌성마비에 걸렸고, 이어 전신 마비가 찾아왔습니다. 눈만 움직이고 울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12살이 되었을 때, 그의 엄마가 하는 가게에 한 목사님이 전도를 위해 찾아오셨다가 성경 한 권을 주고 가셨습니다. 그의 엄마가 그에게 그 성경을 한장 한장 읽어 주자, 그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말씀에 은혜를 받은 그는, 그 전에는 죽고 싶어서 눈물을 흘렸었지만, 그때부터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영성을 얻은 그는 감사의 글을 시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뇌성마비인 그가 스스로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엄마가 히라가나를 차례로 읽어주면 자신이 쓰고자 하는 단어에서 눈을 깜빡그렸습니다. 그러면 엄마가 그것을 글로 썼습니다. 그렇게 한뜸 한뜸 힘들게 쓴 시 하나를 소개합니다. '언제 어느 때라도' 라는 시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고 있는 아름다운 삶을 볼 수 있습니다.
언제 어느 때라도
약속대로 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며 기다리는
바라며 기다리는 신앙을
언제 어느 때라도 갖게 하소서
아직 그 때가 오지 않았지만 그리스도라는 말씀에
망설이지 않는
망설이지 않는 신앙을
언제 어느 때라도 갖게 하소서
진정한 평화가 오도록
그리스도 때가 가까워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들을 수 있는 신앙을
언제 어느 때라도 갖게 하소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속해 살고 있는가
어디를 가장 많이 바라보며 살고 있는가
이 땅만 바라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고 소망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 보고 3절과 4절을 붙들고 사는 새로운 한주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렵지 않고 솨히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