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3_설교정리_믿음의 방해물 염려 (히 11:6, 밷전 5:7)
○ 공동기도
① 코로나 백신의 안정적인 공급을 통해 국민적인 집단 면역이 잘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② 선교사님들의 가정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코로나로 무너진 선교의 기초들이 새롭게 세워지게 하옵소서
③ 중보기도 사역에 헌신하는 분들에게 은혜를 더하시고 기도를 통해 우리 교회가 더욱 영적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 말씀전문
[히브리서 11장 6절]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베드로전서 5장 7절]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 설교요약
마틴 루터도 종교개혁 말기에 너무 힘들고 지쳐서 개혁 활동을 포기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손을 놓고는 "모든 것이 끝났다"며 누워있자, 그의 아내가 상복을 입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루터가 "누가 죽었소?" 하고 묻자, 그의 아내는 "예, 하나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면 당신이 그렇게 손놓고 누워 있을리가 없잖아요". 아내의 말을 들은 루터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렇지 하나님은 살아계시지" 하고는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루터에게도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우리라고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없겠습니까? 특히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시기에, 언뜻 '내게 믿음이 있기나 한 건가? 내가 믿기나 했던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믿음이 살아있고, 그 믿음이 주는 유익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그럼 우리가 잃어버린 믿음의 영성을 회복하려면...
1. 믿음의 부재를 회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4장 37절부터 40절을 보겠습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혀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음을 꾸짖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두려움이 몰려오는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을 잃어버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결정적일 때 돈을 믿고 사람을 믿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사라지는 믿음, 이 같은 믿음을 저는 '신앙인의 불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꾸짖으며 믿음이 없다 하신 그 제자들의 신앙도 이 신앙입니다. 이 '신앙인의 불신앙'이 내게도 있음을 고백하고, 그것이 믿음의 부재임을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다시 주님을 믿게 만들어 줍니다.
평소의 믿음으로 주님은 내 안에 계십니다. 그 주님이 내게 결정적인 일이 생겼다고 나에게서 떠나시지는 않습니다. 내 신앙인의 불신앙 때문에 마치 주님이 내게로부터 떠나신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될 뿐입니다. 주께서 나를 떠나신 것 같이 느껴질 때, 주님이 나와 함께 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부재를 회개하고,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다시 주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기 바랍니다.
2. 믿음의 성장의 방편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그 믿음이 자라가야 합니다. 초심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성장과 발전이 초심을 유지하게 만듭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장하는 믿음만이 그 믿음을 유지하게 해줍니다.
믿음은 가만히 있어도 자연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나와 앉아 있다고 커 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성숙에는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을 보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믿음이 자라는 Key(열쇠)를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① 믿음의 시작은 예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을 바라보자"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주는 '아르케곤' 입니다. 시작 혹은 창시자라는 뜻입니다. 그를 바라볼 때 믿음이 시작됩니다. 믿음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② 믿음의 성숙은 예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온전하게 하시는'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텔레이오텐'인데, 완성자 혹은 성숙케 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완성으로 이끌어 가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분을 바라보면 우리의 신앙이 멈추지 않고 성숙하게 자라갑니다. ③ 믿음의 시작과 성숙은 예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바라보다'는 '아프론테스'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다 혹은 눈을 고정시키다 라는 의미입니다. 영어로는 'Fixing our eyes on JESUS' 입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바라볼 때 믿음이 자랍니다.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바라봐야만 신앙이 성숙해 가는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살아감을 깨닫게 된다고 고백합니다. 제자훈련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영성일기를 통해 이를 고백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에 대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 연수가 긴 사람들이 연수를 더해 가면서 오히려 덤덤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일 예배에서 주님을 생각하다가, 주중에는 아예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는 우리에게 남는 것은 염려와 근심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성숙하는 자는 기쁨이 늘어나지만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는 자는 그 자리에 염려와 근심이 쌓여가기 때문입니다.
머리로 하는 신앙과 실제의 신앙은 다릅니다.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 하는 신앙이 제대로 된 신앙입니다. 그 제대로 된 신앙은 늘 주님과 함께 할 때 가질 수 있습니다. 늘 주님과 함께 하는 믿음을 가지려면 내 신앙이 성숙해지고 자라갈 때, 내 안에 유지되게 됩니다. 이 믿음 성장의 방편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3. 믿음의 방해물을 제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성장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성장 과정에 방해물도 많이 있습니다. 믿음의 가장 큰 방해물은 염려와 근심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믿음이 없어지는 것은 불신앙이 아니라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마테복음 6장 30절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라고 하셨습니다. 염려와 근심과 걱정은 '믿음이 적은 자들'에게서 생긴다고 하셨습니다. 염려와 근심이 믿음이 적은 자로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Cast your anxiety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 방해물을 제거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염려를 주께 맡기면 주께서 그 염려를 돌보아 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돈이 우리의 염려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내 통장에 갑자기 1억원이 들어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때부터 우리는 1억원 이하에 해당하는 모든 걱정들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천만원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일, 오백만원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걱정, 등등 1억원까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도 유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내어 놓는 염려만큼 받아주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빌립보서 4장 6절과 7절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와 걱정은 우리가 예수 안에 있을 때 해결해 주십니다. 염려가 우리의 믿음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그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나는 내 염려를 얼마나 주님께 내어 맡기는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염려를 남김 없이 하나님께 맡기고, 그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고 돌봐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믿음이 회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