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4_설교정리_구겨진 인생 위에 쓰시는 최고의 Story (요 5:2-9)
○ 말씀전문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 설교요약
삶은 책입니다. 그 책의 저자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면 그 첫 페이지를 펴시고 이야기를 쓰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삶의 주인임을 잊은 채 내가 펜을 들려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저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내 삶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면 더 늦기 전에 내가 쥐었던 펜을 하나님께 넘겨드려야 합니다. 더우기 지금까지 써 온 삶이 구겨진 이야기였다면, 힘들고 어려운 삶이었다면, 방황과 아픔이 가득한 삶이었다면, 더욱 빨리 하나님께 저자권을 넘겨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나라 이야기가 됩니다.
오늘 말씀은 38년간이나 병마에 시달려온 한 병자의 이야기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에서 치유를 받기 위해 몸부림 쳐온, 그 인생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한 인생의 이야기입니다. 그 구겨진 인생이 예수님을 만나 기적같은 구원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소망이 사라졌던 그 사람의 삶이 예수님을 만나 아름다운 이야기로 스토리가 바뀌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구겨진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코로나 사태로, 돈 문제로, 질병의 문제로, 사업 문제로, 직장문제 등, 각가지 문제로 아프고 쓰라린 구겨진 삶 속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럴 때 어떻게 하면 베데스다 연못 가의 병자처럼 기적같은 인생을 회복할 수 있을지를 보여줍니다. 그럼 우리가 구겨진 인생 위에 예수님이 쓰시는 기적같은 스토리를 경험하려면...
1. 베데스다의 지나친 경쟁의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에는 가끔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물이 움직인 후에 가장 먼저 그 물에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려있었던 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등, 중병 환자들이 누워서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렸습니다.
천사가 물을 움직이면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경쟁을 벌였습니다. 거기에 38년 간이나 누워 기회를 엿보고 있던 한 병자가 있었습니다. 스스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38년 간이나 기회를 남에게 빼앗기는 쓰라림을 맛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베데스다란 '자비'라는 뜻입니다. 물에 들어가면 낫게 된다는 자비가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병자들 간의 치열한 경쟁과 그 경쟁으로 인한 불행도 있었습니다.
어떤 권사님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공부를 꽤 잘 했다는데도 대학 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낙심한 권사님은 그 일로 인해 몸져 누우셨는데, 동생 되시는 목사님이 말씀도 들려드리고 기도도 해 주었지만 좀처럼 일어나시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날도 위로해 드리려고 찾아 뵈었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나 계셨습니다. 그 연유를 물었더니, 권사님이 아는 사람 중에 아들 보다도 훨씬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도 대학 시험에 떨어졌다는 소식이 권사님을 일어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부닥친 힘든 문제 보다도, 비교의식 때문에 더 힘들어 합니다. 자녀비교, 아파트 평수 비교, 외제차 비교 등,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불행한 마음을 자초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비교의식이 불행한 마음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서도 그 문제로부터 자유하지 못합니다. 비교의식, 경쟁의식은 없애려고 한다고 없어지지가 않습니다. 그 상대를 보면서 없애려고 하면 더욱 깊어지기도 합니다. 방법은 주님을 바라보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주님만 생각하고 기도에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바로 우리의 삶의 저자권을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2. 내 인생의 상처와 아픔을 아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자비의 연못이었지만 그곳에는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아픔 또한 있는 연못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비교의식과 경쟁의식을 없앤다고 해서 병이 낫는 것은 아닙니다.
38년 간이나 고통 속에 있던 그가 치유를 받은 것은 그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찾아온 예수님은 그에게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는 '보시고'와 '아시고'입니다. '보시고'는 Jesus saw him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보시다'라는 것이며, '아시고'는 '관찰과 경험을 통해 속속들이 아신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38년 동안이나 얼마나 비교의식과 열등의식으로 아프게 살았는지 아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아픔을 해결해 주지 못하더라도 같은 마음으로 들어주고 같이 울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큰 위로를 받습니다. 마음으로 많은 치유를 얻게 됩니다. 미국의 어떤 토크 진행자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그것은 진심으로 아픈 출연자들의 말을 공감하며 들어주고,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더해 "I know your pain" 라면서 공감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공감하는 자세가 수많은 시청자들을 눈물지게 하는 대신에 출연자에게는 마음의 아픔을 덜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잘 아시는지 시편의 짧은 말씀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시편139편 1절로부터 4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이처럼 우리를 속속히 아시는 하나님은 만나면 우리는 마음의 병도, 그 어떤 문제도 단숨에 해결됩니다. 오늘 베데스다 연못 가의 38년 병자 같은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예수님이 아무리 구겨져 있는 삶이라도 새롭게 써 주실 것입니다. 그 예수님과의 만남을 소망하는 새로운 한주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3. 내 영혼의 레마의 말씀을 듣고 나아가야 합니다.
38년 간이나 베데스다 연못 가에서 물이 움직이는 것을 기다리며 아프게 살아온 그 병자에게 예수님이 찾아와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낫고자 38년 간이나 몸부림치며 살아온 그에게 이 질문은 정말로 우문 같은 질문이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왜 그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우리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똑같이 묻고 계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말입니다. 그 38년간의 병자가 나은 것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8절) 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문제의 치유에도 하나님의 레마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치유의 은혜를 베푸시고는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일어나 걸어가라고만 하시지 않고 왜 38년 간이나 깔고 누웠던 그 아픈 자리를 들고 가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그 베데스다의 상처와 치유의 은혜를 잊지 말고 살라는 것입니다. 38년 간이나 걸어보지 못한 그에게 예수님의 말 한마디로 다시 걷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어 보았을 것입니다. 어설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일어나 걸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이 듣고 순종함이 있었기에, 그는 구겨질 대로 구겨졌던 지난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레마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을 주십사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들렸을 때 그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이 들음과 순종함이 내 인생에 하나님의 새로운 Story를 이루어내는 아름다운 화음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