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17_설교정리_말씀이 내게 살아있게 하옵소서
○ 말씀전문
(요한복음 4장 46~54절)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 말씀요약
온 나라가 '정인이' 사건으로 울분을 터뜨리기도 하고 가슴을 쥐어 뜯으며 아파하기도 합니다. 마치 우리들 자신이 지은 죄처럼 '미안해'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매말라 가고 있어도 그래도 아이들에게만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마음들이 살아있음이 그래도 다행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신 것도 아이로 인해 한 가정이 아파하던 것을 치유해 주신 사건입니다. 영어 원문에 보면 이 아이 앞에 정관사 'the'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유일한 자식, 즉 독자였음이 틀림 없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그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정에 하나님이 치유의 기적을 베푸시고, 온 가정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비단 아이 문제가 아닐지라도 치유가 필요한 일들이 산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일들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도 또 하나의 살아있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 기적이 일어나려면...
1. A.S.K의 부르짖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부르짖음과 기도에서 그 응답이 시작됩니다. Ask, Seek, Knock 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갈릴리는 헤롯 안티파스 왕이 다스리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왕의 신하는 이 왕 바로 밑에서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신하입니다. 그에게는 아무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단지 아이가 아픈 것 말고는 말입니다.
그는 왕 말고는 하리를 굽혀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아들을 위해 예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습니다. 46절과 47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그가 한 행동은 '듣고', '가서', '청하되' 였습니다. 청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로타오'인데, 미완료시제입니다. 즉, 계속 구하고, 구하고, 또 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이런 기적을 경험하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가지고 나가서 찾고 구하고 두드려야 합니다. 후배 목사 중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라고 믿으며 사역을 해 오신 분이 있습니다. 젊어서부터 이를 깨닫고는, 기도를 할 때도 일일이 기도제목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제 사정을 다 알고 계시지요?" 하면서 모든 것을 의탁한다면서 기도를 해 오셨다고 합니다. 그런 어느날 진짜 힘든 상황에서 기도를 하는데, 그날도 "하나님 제 사정 다 알고 계시지요?" 하면서 기도를 하다가 놀라운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나는 다 안다. 그런데 너는 아느냐? 진짜 네 형편을 잘 아느냐?"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것은 이런 기도가 아니라 정말 내 사정을 간절히 아뢰고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려면 시간이 들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하나님 제 사정 다 알고 계시지요?" 라며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올려드리는 기도 제목에 대해 내 자신이 정말 알고 이해하고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부르짖음의 기도입니다. 이 부르짖음의 기도에서 하나님의 응답이 시작됩니다.
2. 말씀이 내게 역사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왕의 신하가 간청하는 말을 다시 보겠습니다. 47절입니다.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그러자 예수님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8절)".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봐야만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믿음의 전환점이 있습니다. 5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갔다는 것입니다. 아직 그는 자신의 아들이 나았다는 것을 눈으로 보지 않은 상태인데도 말입니다. 이 놀라운 믿음 '믿고 가더라'는 '에시피스튜센'으로 3가지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① 믿었다 (believed), ② 확신하였다 (convinced), ③ 맡겼다 (enterusted) 라는 3가지를 모두 갖고 있습니다.
그가 정말로 믿고 확신하고 맡겼는지를 우리는 다음 절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그가 믿지만 정말 진짜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면 곧장 아들이 있는 가버나움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가나에서 가버나움까지는 30Km 밖에 되지 않습니다. 51절과 52절을 보겠습니다.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라고 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역사는 정말 믿고 나아갔을 때 일어납니다. 정말 믿고 나아갈 때, 말씀이 내게 살아있게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믿고 나아가서 기적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축복합니다. 인생이 결정적으로 바뀌는 것은 말씀의 은혜를 믿고 나아갈 때 일어납니다.
3. 예수님이 모든 해결자이심을 믿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간구하여 문제를 해결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면 그 시간에는 감사함으로 뛸 듯이 기뻐하지만 곧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돌보심의 은혜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오늘 이 신하의 가정은 아이가 낫게 되는 기적 앞에서 그냥 기뻐하고 감사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새로운 믿음의 인생으로 바뀝니다. 이 고백이 그 가정을 영원히 축복하게 됩니다.
마가복음 5장에는 12년 간이나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혈루병은 남편으로부터 버림받는 유명한 병이었습니다. 마가복음 5장 25절부터 28절입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옷에 손만 대어도 나으리라는 고백, 예수님이 문제 해결자이심을 믿는 고백이 이 여인의 혈루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세상에는 그 어떤 문제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다고 자포자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산더미 같이 많은 문제, 아무리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느껴지는 어려운 문제일지라도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키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에 있습니다.
2021년 새해가 어둡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어 접종이 곧 시작된다고는 하지만,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암울한 때에,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입니다.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심을 믿고 고백하여, 다시 일상이 회복되는 기적을 소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