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7_설교정리_코로나 광야에서 부르는 내일의 노래 (시63:1~4, 34:18~19)
○ 말씀전문
[시편 63편 1~4]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시편 34편 18~19]
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 설교요약
장성주 시인의 [대추 한 알] 이라는 시가 생각이 납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달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대추는 그냥 익어지는 게 아닙니다. 태풍을 맞고 천둥이 치고 벼락을 넘겨야만 익어집니다. 우리 인생과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2020년이 유독 심한 천둥과 번개 속에서 지나갑니다. 우리의 인생과 신앙이 아름답게 영글어 졌을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보는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63편의 소제목도 다윗이 "유다 광야에 있을 때"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2020년을 딱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라면 삶에서도 신앙에서도 "광야"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다윗의 시편 말씀을 통해, 이 광야를 지날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 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광야를 통해 하나님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이집트 카이로에 출장을 간 일이 있습니다. 현지 근무자들이, 나에게 오기가 쉽지 않은 곳이라며, 일과를 일찍이 매듭짓고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구경을 시켜주었습니다. 광야가 시작되는 시점에 피라미드가 있었는데, 그곳엔 관광객들을 낙타에 태워서 사막 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나오는 관광 코스가 있었습니다. 나더러 생각이 있으면 한번 들어갔다가 오는게 어떠냐고 했지만, 광야의 입구에서 바라보는 그곳 조차도 아무것도 없는 미지의 세계처럼 무섭게 여겨져서 포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광야는 정말 황무하고 삭막한 곳입니다.
다윗은 그곳에서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라며 간절히 주를 찾습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도 주는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진희씨가 지은 [광야를 읽다]라는 책 내용 중에, "왜 이렇게 나 한테는 없는 것 뿐인가? 저축한 돈도 없고, 은퇴 연금도 없고, 집세도 없고, 직장도 없고, 차도 없고, 보험도 없는 내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고 끔찍하게 여겨진다. 이렇게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그뿐만 아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다. 이런 절망적인 광야에 딱 하는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광야에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단지 우리가 찾을 때 말입니다.
2020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정말 길게 느껴지는 한 해였습니다. 반복되는 코로나 확산으로 앞이 보이지 않던 한 해였습니다. 아직도 코로나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앞이 캄캄합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이 광야 같은 인생에도 딱 하나 있는 그것,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면 하나님이 모습을 드러내시어 "엘로힘(창조주 하나님) 엘리(나의 하나님) 앗타(주는)", 즉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같이 찾아오십니다.
2. 자신의 부서짐과 깨어짐을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광야 속에서도 원하면 하나님을 찾을 수 있지만, 어찌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로 내모셨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광야를 통해 우리에게 깨우칠 것이 있음을 보여주시고자 함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을 찾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34편 18절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라고 합니다. 또한 51편 17절에서도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하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달라붙어 깨어지지 않고 있는 자아가 깨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광야를 지나봐야 이 인생의 군더더기들을 털어낼 수 있습니다. 철강이 대장장이의 망치로 두들겨져야 부스러기들을 털고 강철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세상 방식만 고집하는 내 아집과 고집을 털어내도록 하기 위해 광야를 두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020년에 찾아온 코로나의 광야를 그냥 고통스런 시간으로만 남겨두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깨어지고 부서지는 시간이 되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바라시는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3. 광야를 통해 새로운 기대와 비전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2020년을 보내고 2021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도 우리의 눈에는 암울함만 보입니다. 천 명을 오르내리는 확진자들로 인해 조만간 거리두기 3단계가 공표될 것이라고들 합니다. 불빛도 없는 긴 터널 속에 놓인 것 같은 갑갑함과 답답함으로, 우울한 마음으로 짖눌려 있습니다. 기쁨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찬송가 조차도 무겁게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왜곡된 자아를 만드는 우리의 삶의 습성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사람인가? 라며 자신의 능력과 신분을 붙잡고 내려놓지 못합니다. ② 나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 라며 자신의 권력과 직위를 내려놓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③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쳐다볼 것인가? 라며 체면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왜곡된 자아를 형성하고, 그로 인해 우울하고 답답해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아와 환경에 붙잡히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내일을 노래해야 합니다. 다윗은 63편 4절부터 7절까지처럼 노래했습니다.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45편 5절에서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답답해 하고 우울해 하며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주님은 바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데 어찌하여 낙심하며 불안해 하느냐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광야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소망으로 두고 노래하기를 바라십니다. 그 노래대로 소망이 이루어주십니다. 지나가는 2020년을 돌아보며 한숨 쉬지 말고 2021년에 이루어주실 소망을 바라보고 노래하며 나아가는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