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01101_ACTS29 (21) 코로나 시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의 영성 (행13:1~5)

서정원 (JELOME) 2020. 11. 1. 12:16

○ 말씀전문

1 안디옥 교회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 설교요약

코로나가 우리의 삶을 많이 흐트려 놓았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기회로 삼아 우리의 삶의 형태가 바뀌어져야 할 것도 있지만, 회복되어야 할 것도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빠르게 회복되어야 할 것은 영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코로나의 어려움을 통해 오히려 신앙심이 높아진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배가 흐트러지고, 기도가 흐트러지고, 섬김이 흐터러진 듯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다시 차분하게 마음을 추스리고 영성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영성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말씀과 역사들이 있습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천로역정 7대 영성]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가 순례여정에서 배워야 할 7가지 영성을 가르쳐줍니다. 소개하자면 ① 천국을 향한 구원의 영성, ② 십자가 영성, ③ 성화의 영성, ④ 공동체의 영성, ⑤ 고난의 영성, ⑥ 일상의 영성, ⑦ 완주의 영성입니다. 우리가 영성을 회복하려면 이 중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경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영성 회복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받은 말씀, 즉 안디록 교회를 통해서도 영성 회복의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영성 화복은...

 

1. 선교와 전도의 영성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선교하는 교회, 전도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명의 본이 되는 리더가 세워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로 바울과 바나바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울의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이 오늘 안디옥 교회에서 세워지고 출발하는 이 모습에서 시작됩니다. 2절과 3절입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사도행전 13장 이전까지 예수믿는 사람들의 박해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예수를 믿는 자들에 대한 핍박과 박해가 계속되고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런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안디옥 교회는 전도 사역을 멈추지 않고, 오히려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이 일이 "내가 불러 시킨 일을 위하여" 즉 성령이 불러서 시킨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선교와 전도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영성은 박해 속에서도 꺼지기는커녕 활활 불타올랐던 것입니다.

영국에 있는 웨스트민스터교회는 지금도 많은 여행객들이 들리는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여행 가이드는 이 교회가 250년이나 걸려 지으진 아름다운 교회이고, 그 안에는 처칠과 엘리자베스 등 3,000명이 넘는 유명인들이 잠들어 있다며 자랑을 합니다. 그때 어떤 여행객이 가이드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공들여 지은 이곳에서 최근에 전도된 사람은 몇이나 되나요?" 이 한마디 질문으로 가이드의 자랑은 부끄러움으로 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교와 전도가 없는 교회는 영성이 죽은 교회입니다. 선교와 전도는 살아있는 영성에 의해 일어납니다. 그로므로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침체되어 있는 영성을 다시 깨우고 회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선교와 전도를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2. 성령에 민감한 묵상의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휩쓸려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차분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페이스를 잃으면 우왕좌왕 해지고, 평상심을 잃게 됩니다. 한번 그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게 되면 좀처럼 일상을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눈앞에 다가온 일을 쳐내기에만 바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 안디옥 교회가 이처럼 성령에 민감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2절과 4절입니다.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혹독한 핍박과 박해 속에서도 안디옥 교회는 성령에 민감해 있었기에, 세상의 조롱과 핍박이 아니라 그것을 뚫고 들어오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민감함이 바울을 만들고 바나바를 만들었으며, 사도행전의 역사를 쓰게 했습니다.

짐엘리엇은 사탄이 지배하는 것은 '군중, 조급함, 소음'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군중의 소리를 듣게 하고 끊임없이 초조하게 하며 불안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코로나 시기에 늘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늘 불안해 하는 것을 보면 엘리엇의 말이 맞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떨쳐버리기 위해 묵상의 영성을 구해야 합니다. 사탄의 유혹 속에서 초조하고 불안한 채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앞에 마주한 코로나만 바라보지 말고 그 너머에 계신 주를 바라보는 묵상의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수도사 비보2세는 은혜의 길을 가는 사람들, 즉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4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① 렉치오디비나 (거룩한 독서), ② 메디타치오 (묵상), ③ 오라시오 (입술로 소리내어 기도하는 구두적 기도), ④ 컴템폴라시오 (임재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짐엘리엇이 언급한 사탄의 지배를 떨쳐버리는 수단이 비보2세가 말한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의 휘둘림을 떨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이 묵상의 영성을 구해야 합니다.

대전에서 3,000명이 넘는 성도들과 함께 섬기던 목사님이 최근에 결단을 하고는 그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100명도 채 안되는 미국의 한 개척교회로 가셨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사례비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 분이 그 결단을 내리게 된 배경은, 늘 습관처럼 묵상의 시간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묵상 중에 성령의 음성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간증을 듣고는 '이 코로나 시기에 우리 교회에 주시는 성령의 지시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묵상하지 않으면 성령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세상 소리만 들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합니다. 오늘 어떤 길을 가기를 원하시는지, 내게 주시는 뜻이 무엇인지, 내 가정에 주시는 뜻이 무엇인지, 묵상을 통해 묻고 인도 받기를 축원합니다. 이사야 30장 21절입니다.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주의 말씀, '이것이 바른 길이니 이리로 가라'는 말씀이 이 한 주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3. 예배와 금식의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2절과 3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주를 섬긴다는 것은 예배드린다는 것을 말합니다. While they worshipping the LOAD. 예배 정신에는 희생과 헌신이 있습니다. 구약의 레위기에서 이 예배 정신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레위기 1장의 3절부터 5절을 보겠습니다.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그는 번제물의 머리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번제의 원칙으로 흠 없는 수컷을 드려야 합니다. 제사의 제물을 준비할 때, 흠 없는 것을 찾기 위해 양들을 일일이 살펴봐야 합니다. 아무 것이나 잡아서 드리면 안되었습니다. 일일이 살펴보고 흠 없는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에는 충실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 짐승을 제주가 직접 잡아야 했습니다. 자기가 기르던 양을 직접 죽여야 했습니다. 가족처럼 아끼고 돌보던 것을, 자기 죄 대신으로 드리기 위해 직접 죽여야만 했습니다. 그만큼 예배에는 아픔과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예배가 일상의 예배처럼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해보니 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되돌아 보고 경계해야  할 것은 그만큼 희생과 헌신이 연약한 예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예배의 정신이 얕아지면 우리의 영성 회복도 그만큼 더뎌지게 됨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에서는 또한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금식이 주는 목적과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금식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알려는 몸부림의 상징입니다. 내가 얼마나 갈급한가를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아무리 마음을 강하게 먹어도 오래 가지 않아 마음이 변하게 됩니다. 그럴 때 그 마음을 더욱 강하게 다잡을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금식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 코로나 시기에 우리는 앞길을 보여주는 성령의 도움을 갈망합니다. 그런데 그 도움을 구하는 사람마다 그 깊이와 간절함이 다릅니다. 그냥 입술로만 부르짖는 사람이 있고, 가슴을 치고, 금식하며 부르짖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더욱 애절하고 갈급한지는 분명합니다.

이사야 58장 6절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금식의 유익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생각지도 못한 질병, 생각지도 못한 실직 등 흉악과 멍에의 줄을 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 금식의 기도가 그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의 줄을 끌러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의 회복과 금식의 회복을 통해 다시 예전의 영성을 회복하고 나아가 오히려 더 강한 영성의 삶을 살기를 소망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