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7_설교정리_ACTS29 (16) Way Maker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라 (행 8:1~6)
○ 말씀전문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 설교요약
오늘 본문은 복음의 새 길을 만들어 가시는 Way Maker로서의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음의 확장을 위해 새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도 새 길을 만들어 주십니다. 비록 지금 눈 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언제나 우리의 소망을 들어시고 가장 좋은 새 길을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Way Maker로서 오늘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려면...
1.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초대교회는 큰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며 완벽한 교회를 이루어가던 그 시점에 왜 초대교회에 이런 고난이 주어졌을까요. 단순한 눈으로 보면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단초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눌라운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내적으로는 영적 충만했지만 또한 극히 폐쇄적이기도 했습니다. 이 폐쇄적인 모습으로는 예수님이 명령하신 복음의 사명이 이루어지기 어려웠습니다. 이루어지더라도 유대인 중심으로 한정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복음의 더 큰 진보, 복음의 미래를 위해 강제로 초대교회를 흩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흩어짐도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입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를 가장 잘 알았던 사람이 요셉입니다. 17세에 노예로 팔려간 그의 삶이 오히려 축복이 된 것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5장 5절과 7~8절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자신을 애굽으로 보낸 것은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이 코로나 사태를 하나님이 모르고 계실리 없습니다. 우리를 그 한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이유, 섭리, 계획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미션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찾아내는 자에게는 이 코로나의 고통이 오히려 축복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유통업체 회장이신 유명한 장로님이 자기 회사가 대형 화제로 인해 큰 어려움에 처했다가 그 어려움이 회복되었을 때 했던 간증이 생각이 납니다. "고난은 그 섭리를 발견하는 자에게는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일 듯 합니다. 현장 예배를 막으시고 온라인 예배로 흩어신 이유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삶에 던지신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면 거기에도 분명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 섭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섭리를 깨닫는 자가 될 때, 우리는 그 고난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게 됩니다.
2. 고난 속에서도 예배의 불꽃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사도 중에 빌립이라는 집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초대교회를 흩어지게 했을 때, 그는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기적을 행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지옥의 불쏘시게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이방인들 보다도 더 사마리아인을 멸시했던 시대였습니다. 비단 일반 백성들뿐만 아니라 사도들 역시 일반 백성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시대였습니다. 그곳에 빌립이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다들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7절과 8절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단순히 보면 기적을 바라보고는 기뻐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으니"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데라퓨오" 인데 데라퓨오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치유하다" 이고 다른 하나는 "예배드리다" 라는 뜻입니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치유 때문에 기뻐했다 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 치유를 보고 하나님께 감동하여 엎드려 예배를 드렸으며, 그 예배 드림을 보고 기뻐했다 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기적으로 인해 기뻐했다 라고 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록된 것이 성경이라고 볼 때는 오히려 예배드림을 보고 기뻐했다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지금은 "예배의 광야 시기"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예배의 불꽃입니다. 코로나와 같은 광야를 주신 것은 그 동안 우리가 했던 너무나 익숙한 예배, 매너리즘에 빠져 드린 예배를 벗고, 내 삶을 드리는 예배, 전심의 예배를 회복하라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비록 온라인 예배 형태일지언정 불꽃 같은 예배, 전심의 예배를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이 새 길을 만들어 가시는 Way Maker 이심을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3. 고난 속에서도 영적으로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빌립이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뒤 이어 요한과 베드로가 내려와서 사람들에게 안수 함으로써 사마리아 인들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보고는, 마술사 시몬이 감동이 되어 그 권능을 자기에게 팔라고 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를 꾸짖습니다. 20절~22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여기서 성경은 왜 시몬을 내 세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쉽게 은혜를 받으려는 것을 경계시키고자 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앙의 편의주의, 또 황금만능주의를 배격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예수를 믿으려면 제대로 믿어라는 것이지요.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라고 했는데 여기서 기도하라는 용어에는 "프로슈코마이"와 "데오마이"가 있습니다. "프로슈코마이"는 통상적인 기도를 뜻하지만, "데오마이"는 "묶다", "붙들어매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데오마이"를 말합니다. "너 자신을 주께 묶어 두라", "네 마음을 주께 동여매라" 라는 뜻입니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주는 영적 도전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어라" 쉽게 쉽게 은혜를 받으려는 우리의 모습, 쉽게 쉽게 신앙생활 하려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금요일 아침에 일찍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좀 더 자려고 해 봤지만 정신이 오히려 더욱 맑아지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일어나 교회에 와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마음에 말씀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과 5절이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나와 우리 교회에 주신 말씀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코로나 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내 스스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어있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을 붙들고 바라볼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Way Maker,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배의 불꽃으로 화답하며, 이를 악문 간절함으로 하나님께 붙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