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00913_설교정리_ACTS29 ⑭ 함께 하는 영적인 아둘람 공동체가 되게 하라 (행 6:3~7)

서정원 (JELOME) 2020. 9. 14. 16:00

○ 말씀전문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바메나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 설교요약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도 힘든 상황에 놓여 있고, 각자가 속한 공동체도 영적으로 조금씩 와해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우리의 영적 강건함을 유지해 가야 하겠습니다. 아프다고 먹는 것도 귀찮아 하고, 힘 없다고 운동을 게을리 하면 우리의 몸은 더욱 망가져서 회복 불능의 상태를 초래하게 됩니다. 영적 강건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적 건강이 회복되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도행전의 새로운 주역은 물론 구경꾼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ACTS29를 위해 추구해야 할 것은...

 

1. 문제에 대한 수용성이 있어야 합니다.

암에 걸린 환자에게 심방을 간 적이 있습니다. 환자를 뵙고는 무엇이 가장 힘드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픔으로 인한 고통보다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가장 힘들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고난을 만나게 되면 왜 자신이 이 일을 당해야만 하는지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 문제가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채 그것에만 매달리어 시간을 다 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나면 내게도 그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수용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Solution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의 초대교회의 강점이 거기에 있습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초대교회, 그 초대교회에도 히브리파와 헬라파 사이의 문제,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수용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수용하고 곧장 헬라파 장로들을 중심으로 리더들을 세웠습니다.

이 수용성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수용하고 하나님 앞으로 가져갈 때, 그 문제는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에 대한 수용성을 키워서 주님 앞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문제 해결의 시발점은 그 문제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수용성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암울한 이 시기에, 왜 이런 고난이 우리에게 주어졌는지만 붙잡고 힘들어 하지 말고, 이 고난이 우리에게도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차분하게 하나님 앞에 구원을 청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함께 하는 영적인 아둘람 공동체가 있어야 합니다.

빨리 가려면 달려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 해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여럿이 함께 모여 각자 역할을 맡아서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가 부흥하자 사도들이 구제와 전도를 함께 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 자들을 뽑아서 그들에게 구제를 맡기고 자신들은 말씀과 기도에 힘쓰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또 하나님의 강점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장로들의 이름에서 우리는 그들이 대부분 헬라파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파 중심으로 구성된 사도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헬라파에게 내어주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한 공동체 라는 의식을 확고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도 그랬습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입니다. "안디옥 교회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여기에 나오는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에서, 니게르는 '검다' 라는 뜻으로 '니그로'와 어원을 같이 합니다. 즉 유색인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시대에 유색인종을 리더로 세웠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공동체는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들어갔던 아둘람에는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아둘람 같은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어떠한 사람이든, 언제 어느 때든, 찾아와서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꿈꿉니다. 이런 함께 함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집중하고, 힘을 모아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게 됩니다.

 

3. 말씀이 내게 역사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수용성과, 함께 하는 포용성을, 갖춘 초대교회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7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초대교회의 결정적인 힘은 말씀이 살아 있고, 기도가 살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말씀에 대한 집중력과 기도에 대한 집중력이 말씀을 살아있게 합니다.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보다 구제 현장에 있으면 더 돋보이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겠지만, 그들은 과감하게 그것을 새로 세운 장로들에게 맏기고 말씀과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코로나가 없어지면 자연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살고 기도가 살아있어야 나도, 내 가정도, 내 직장도 올바르게 살아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코로나로 인해 어수선한 이 시기에 우리는 더욱 말씀을 붙잡고 기도를 붙잡고 살아서, 우리의 영이 강건하게 유지되도록 힘을 다해야 합니다.

에스겔 37장 1절과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지금의 우리의 삶의 모습이 이런 상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이런 상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지경에 이른 우리의 삶과 한국 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에스겔 37장 4절부터 7절입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마른 뼈를 향해 여호와의 말씀이 선포되자 뼈들이 다시 연결되고 생명이 살아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있고, 기도에 깨어 있을 때, 매마른 우리의 심령이 깨어나고 생명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가 지나갔을 때 이 놀라운 역사가 남겨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