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00802_설교정리_ACTS29 ⑨ 파라클레토스 되시는 성령님을 신뢰하라 (행4:8~12)

서정원 (JELOME) 2020. 8. 2. 12:41

○ 말씀전문

8 이에 베드로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 설교요약

영성 형성(Christian spiritual formation)에 관한 글로 잘 알려진 미국의 철학자 달라스 윌라드는 한국교회에 치명적인 세 가지 독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습니다. ① Attendance (출석 성도), ② Building (교회 건물), ③ Cash (헌금) 중시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을 만나면 어느 교회에 다니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교인 수가 얼마나 되느냐고 묻습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헌금은 얼마나 들어오느냐고 묻습니다. 어떤 아이가 아빠 차를 타고 서울 강남을 지나가다가 큰 교회가 보이자 "와! 좋은 교회다" 라고 외쳤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교회란 크고 돈 많은 교회가 아니라 복음이 살아있는 교회, 성도들이 아름답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교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우리가 복음이 살아있고 아름답게 섬겨서 사도행전29장을 써 갈 수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1.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코로나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에 사람들은 이제 코로나 백신 개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약 140 여종의 바이러스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돌아가면서 유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이러스 마다 그것에 맞는 백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에볼라 바이러스는 효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도 그 삶에 딱 맞는 백신을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깨달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고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자, 산 헤드린 공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서 심문을 하였습니다. 너희가 감히 누구의 이름으로 이 병자를 고치느냐, 예수 얘기를 다시는 입 밖으로 내지 말라고 겁박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런 능력을 발휘할 사람을 하나님이 주신 적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10절과 12절입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람들은 왜 유독 기독교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장하는가 라고 묻기도 합니다. 가정마다 사회마다 여러 종교가 있는데 다 같이 가면 좋지 않은가 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일 듯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각종 종교가 산을 오르는 일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각 종교마다 오르는 산이 다릅니다. 산 정상에 오른다고 모든 산에 구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 믿고 오르는 그 산 정상에만 예수님이 계십니다. 진리에는 불변성과 배타성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1+1은 2입니다. 어떤 공동체에서 1+1은 3이라고 우긴다고 해서, 그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래 주는 것이 편하다고 해서 1+1이 3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조건 포용하는 것이 진리가 아니고 사랑이 아닙니다. 이 시대는 예와 아니요를 적당히 대답하면 편해진다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사도행전29장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시대에도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신해야만 ACTS29의 역사를 써 갈 수 있습니다.

 

2. 코람대오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서의 앉은뱅이 치유 사건으로 공회로 잡혀 갔습니다. 그곳에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당시 유대권력의 No1은 제사장이었습니다. No2는 성전을 지키는 총 대장, 스트라테코스였습니다. No3는 정치적 입지를 쌓고 있는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서슬퍼런 그들 앞에 잡혀온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절입니다.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싫어 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디아포누메노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격노하다, 굉장히 미워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격노하여 베드로와 요한에게 '복음을 전하지 말라, 예수 얘기 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눅들지 않고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18절에서부터 20절입니다.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요한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특히 비천한 여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 베드로가 어떻게 서슬퍼런 산해드린 공회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이 19절에 있습니다. 그 Keyward는 '하나님 앞에서, 에노피온투데우'입니다. 비록 너희는 내가 너희들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확신할 때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할 수 있게 됩니다.

1517년 루터는 로마교회가 면죄부를 돈을 받고 파는 것을 보고는, 95개조 반박문을 내걸고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 파문으로 로마교회는 그를 화형시키기로 하고는 그를 보름스 대성당으로 불렀습니다. 친구들이 말렸지만, 말리는 친구들에게 "화형은 당할 수 있어도 진리는 태워지지 않는다" 라며 그는 그곳으로 가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루터에게 그 반박문을 철회하도록 강요도 하였습니다. 그때 그가 부르짖었던 외침이 죽어 있던 독일 교회를 깨웠습니다. 루터의 외침은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습니다. 저는 취소 할 수도 없고, 취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양심에 반해서 행동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요,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여기 서 있습니다. 저는 달리 행동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 주소서 아멘"

종교개혁의 Keyward는 '코람데오'입니다. 코람 (앞에서)와 데오 (하나님)의 합성어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루터가 외쳤던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신입니다. 이 정신이 없으면 사람들의 눈치, 사람들의 평가만 살피게 됩니다. 이 영성을 회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9월 중에 '영성일기'라는 강좌를 개설하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믿음이 생길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낼 수 있을까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강좌에 등록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을 한 단계 Upgrade시켜주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영성일기, 날마다 묵상하고 영성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이 영성일기를 통해 내 가슴에 코람데오 정신을 확고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Helper (돕는자) 되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베드로와 요한은 서슬퍼런 공회 앞에서 담담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것을 코람데오 정신이 있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코람데오 정신과 더불어 또 하나의 요인이 있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8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라며 성령 충만함 때문임을 나타냅니다. 영어 원문에서는 'filled with the Holy spirit'입니다. 이 성령 충만이 사도행전의 Keyward이자 우리들의 신앙 성공의 Keyward입니다. 성령의 우리말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보호해 주시는 은혜로운 스승'이며 원어로는 '파라클레토스'입니다. 파라는 (곁에서)라는 뜻이고 콜레오는 (부르다)의 뜻으로 '곁에서 돕도록 불려진 자' 를 의미합니다. 이 성령의 역할을 세 가지로 정의할 수 있는데. ① Helper (돕는자), ② Advocate (변호자), ③ Comforter (위로자, 격려자) 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 이 도우심과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 성령의 도움으로 담대함을 회복해야 할 시기입니다. 이 성령 충만함을 통해 도와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파라클레토스를 경험하고 다시 힘을 내서 일어서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주에도 주기철 목사님의 삶을 묵상했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혹독한 고문을 당하시고 결국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님이 어떻게 그 혹독한 고문과 압박을 견뎌내셨는지를 묵상했습니다. 순교 전에 잠시 감옥에서 풀려나신 주기철 목사님은 출옥 하지마자 곧바로 교회로 달려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순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설교를 하셨습니다. 이 마지막 설교에서 하신 목사님의 다섯 가지 기도가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 기도는 ①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옵소서, ②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옵소서, ③ 노모와 처자식과 사랑하는 성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④ 의에 죽고 의에 살게 하옵소서, ⑤ 내 영혼을 주께 부탁하나이다. 양지에 있는 순교자기념관에 가면 목사님이 남긴 옥중 명상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욕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답하랴...." 언젠가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이 고백한 글을 보고는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아들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초인적인 분이 아닙니다. 그렇게 강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마음이 약하셨고, 두려워하셨고, 그리고 정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아내의 기도, 그리고 또 하나는 교우들의 기도, 무엇보다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아버지는 그 길을 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특별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성령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무기력해져 있다고 느낄 때, 힘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힘이 나던가요? 오직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성령 충만할 때 우리는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그 파라클레토스를 신뢰하여 힘차게 나아가는 삶을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