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7_설교정리_ACTS29의 비전을 이루는 삶이 되라 (행 1:1~3)
○ 말씀전문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 설교요약
코로나로부터의 회복이 생각보다 늦어지고 있습니다. 온전한 예배가 행해지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믿음이 확고한 성도들과 성령 충만한 교회들은 흔들림 없는 신앙을 유지하고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신앙이 느슨해지고 나태해져 가고 있는 것이 코로나 사태 아래서의 현실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하던 중에 한국교회 부흥의 큰 어른이신 하용조 목사님의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꾼다]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 책에서 목사님은 교회가 추구해야 할 아홉 가지 모습을 제시하셨습니다. ① 성령으로 충만한 공동체, ② 예수의 삶을 사는 공동체, ③ 날마나 기적이 일어나는 공동체, ④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 ⑤ 거룩과 성결과 정직을 추구하는 공동체, ⑥ 평신도를 리더로 세우는 공동체, ⑦ 순교하는 공동체, ⑧ 이방인을 품는 공동체, ⑨ 사도행전 29장까지 써 내려가는 공동체 입니다. 그 책을 다시 펴 든 저의 눈에 아홉 번째의 말씀이 확 들어왔습니다. 바로 이것이 코로나로 인해 침체되고 있는 우리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 우리 성도 각자의 비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럼 오늘의 말씀이 우리가 ACTS29의 비전을 이루는 삶이 되기 위해 주는 렛슨은 ...
1. 행함에 초점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1절에서 누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본 특별히 두드러진 모습은 "행하시며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말은 많은데 행함이 없었지만 예수님께는 행함 즉 실천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는 있고 바리새인을 위시한 사람들에게 없는 것이 바로 행함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교회가 가르치려고는 하는데 행함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목회자나 성도들이 말씀을 드러내면서 가르치려고는 하는데 행함이 부족한 듯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된 모습으로 살아가라고 합니다. 남에게 가르쳐주기 전에 나부터 말씀대로 사는 삶을 살아내어야 합니다. 행함은 거창한 것부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부터 솔선수범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주차 문제입니다. 이 작은 문제에서부터 우리는 남을 배려하여 먼 곳에 주차하고 걸어오는 실천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청년 바보 의사]의 주인공 안수현씨는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중 유행성 출혈열에 걸려 33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4천여명의 조문객이 몰려들었었습니다. 조문객들은 그가 인턴으로 근무했던 병원의 청소부들, 도우미들, 구두닦이 등 사회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는 환자와 눈이 마주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눈도 안 마주치고 할 말만 하고 휙 돌아서는 그런 쌀쌀맞은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많이 아프시냐고 묻기도 하고, 빨리 처치를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웃어주기도 하고, 간호하는 아들이 잘생겼다고 덕담도 해주었습니다. 청년의사는 입원 첫날부터 한밤중이면 살며시 찾아와 환자의 침대 곁에서 기도를 해주는 따뜻한 의사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좋은 성경 공부도 중요하지만 성경의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돈 돈"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과 구별된 자, 구별된 모습을 행하는 자, 그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첫 번째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ACTS29를 이루기 위한 첫 시작으로, 삶을 통해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성령님의 일하심을 주목할 수 있어야 합니다.
2절입니다.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명하시고"란 "성령님을 통해서" 또는 "성령님께 의지해서" 라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역사이면서도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도 부릅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변하는 결정적 타이밍은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을 때입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그냥 변하지는 않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은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하시는 일을 알려줍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한 주에 우리에게 우리가 할 일을 가르쳐주시고 깨닫게 해 달라고 성령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어느 성도님의 고백"입니다. 간증을 하신 성도님은 5남매 중의 맏딸이었습니다. 그녀의 친정에서는 거의 매달 제사를 지내야 할 만큼 제사가 많았습니다. 그녀에게 제사는 정말 지긋지긋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친구를 따라 처음 교회에 갔을 때, 설교 말씀의 주제가 오병이어의 기적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었던 그녀에게는 우스운 얘기일 뿐이었습니다. 그 이후 교회에 나가지않던 그녀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어떻든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6개월 후에 목사님의 심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심방 준비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같은 목장의 동료의 도움으로 준비를 하면서, 그 동료에게 옛 이야기를 하면서, 만약 오늘 목사님이 생선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면 계속 교회에 다닐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심방에서 목사님이 또 그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오병이어의 기적도 가능하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성령의 일하심이 일어난 것입니다. 똑 같은 말씀일지라도 성령님의 일하심이 없을 때와, 있을 때는 받아들이는데 천지 차이인 것입니다. 그 이후 그녀의 아이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아이 귀가 아파서 집 근처의 병원으로 갔더니 의사가 빨리 큰 병원으로 데려가 보라고 했습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소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허리 아래로부터 배까지 전이가 된 상태였습니다. 성령의 일하심을 깨달았던 집사님은 성령의 일하심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완치되어 대학까지 나왔다고 간증했습니다.
성령의 일하심을 믿고 구하면 기적을 이루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간절한 일을 직면하고 있습니까? 성령님의 일하심을 구하십시요. 성령님의 일하심에 주목할 때, 우리는 새로운 사도행전 29장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장 3절입니다.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에서 계속 반복하여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성령 (프뉴마), 교회 (에클레시아), 하나님의 나라 (바실레이아) 입니다. 이 세 단어는 상호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할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또한 교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이룹니다. 개인적인 역사도 이루고, 가정의 역사도 이루며, 나라의 역사도 이루어갑니다. 그런데 그 이루는 역사가 인간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역사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성령의 역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부끄러운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ACTS29를 만들어가려면 만들어가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어야 합니다.
분당의 한 대형교회에서 1만성도 파송을 목표로 삼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30개의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목표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1명의 성도라도 교회를 떠나면 아쉬움을 느끼는데, 그 교회는 1만명을 파송하여 30개의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것입니다. 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한 후배 목사님의 얘기입니다. 20~30명 되는 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와 달라는 청빙을 받았습니다. 대형교회에서 편안하게 목회활동을 하던 분입니다. 원래 그 개척교회에서는 이 목사님의 아버님을 담임목사로 청빙했었는데,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대신 아드님을 청빙하게 된 것입니다. 보통 목사들은 큰 교회로 청빙 받아 갈 때는 다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지만, 작은 교회로 가게 될 때는 그렇게 덕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후배 목사님은 하나님의 은혜라며 그곳으로 가셨습니다.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없다면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교회도 교회 부지를 계약하고 곧 중도금을 치루어야 합니다. 이 비전에 혹, 행여 인간적인 욕심이 끼어들까 걱정을 합니다. 사람의 나라를 바라보게 될까봐 경계를 합니다. 그래서 늘 교회의 핵심 비전을 보고 또 보곤 합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은 ① 다음 세대 (Next Genaration), ② 다음 교회 (Next Church), ③ 다음 선교 (Next Mission) 입니다. 우리 모두 이 비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서로 합력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성을 쌓는 교회가 아니라, 길을 닦는 교회, 복음의 길을 닦는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꿈꾸어야 할 비전은, 행함이 있는 성도, 성령님의 일하심을 추구하는 성도,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성도이어야 하겠습니다. 행함이 있는 교회, 성령의 일하심이 있는 교회,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교회여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사도행전29장을 만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