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_설교정리

200517_창45장 5절~8절_문제를 해석하는 능력을 기르는 사람이 되라

서정원 (JELOME) 2020. 5. 17. 15:51

○ 말씀전문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 말씀요약

[두 쌍둥이의 기적] 이야기입니다. 19951017매사추세츠 메모리얼 병원에서 카이리와 브리엘 잭슨이라는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두 아이는 예정일보다 12주간이나 빨리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때 1킬로그램 밖에 안 되는 조산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 중 한 아이, 브리엘이 심장에 큰 결함을 안고 태어났는데 의사들은 하나같이 그 아기가 곧 죽게 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

​그 아이들은 각각 인큐베이터 안으로 보내져서 양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카이리는 회복이 되어 잘 자라고 있었는데 브리엘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브리엘은 아무리 애를 써도 점점 더 나빠져서 죽기 직전 상태까지 갔습니다. 의사들은 다르게 손 써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때 이들을 안타깝게 돌보던 19년 경력의 간호사는 그 죽어가는 신생아가 뭔가 자기에게 말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녀는 유럽에서 과거에 실시해오던 미숙아 치료법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픈 아기를 건강한 쌍둥이 아기의 인큐베이터 안에 함께 집어넣을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

​이 아기들은 원래 엄마 배 속에서 함께 부둥켜안고 있었는데 아기들을 따로 떼어 둘 것이 아니라 둘을 같이 두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이것은 병원의 방침에 어긋나는 일이었기에 담당 의사는 잠시 고민했지만 간호사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아기 둘을 한 인큐베이터 안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건강한 카이리가 연약한 브리엘을 팔로 감싸 안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뱃속에 있을 때 모습처럼, 아픈 브리엘을 건강한 카이리가 팔로 감싸 안아 주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카이리의 손길이 닿고 얼마 후 브리엘은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맥박 등 각종 생명 수치들이 급속히 정상수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브리엘은 살아났습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 전역에 감동을 전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놀랍고 감동스런 회복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놀랍고 감동적인 회복의 이야기입니다. 17세 때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감으로서 불행이 시작된 요셉은 업친데 덮친격으로 성추행범이라는 죄인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삶에서, 상처와 아픔을 이겨내고 애굽의 총리라는 화려한 삶으로 회복된, 성경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의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도, 그 어느때에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나 뿐만 아니라 주변 모두가 힘들어 하는 이 시기에,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하나님이 주시는 회복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요셉의 회복을 통해 그 비결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요셉의 회복의 비결은...


1. 인생을 해석할 수 있는 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글귀에서 "인생은 해석이다"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습니다. 누구든 살아가면서 비슷한 상황들을 겪게 됩니다. 즐겁고 기쁜 일들도 겪게 되고, 두렵거나 힘든 일들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 다릅니다. 불만과 분노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지혜롭게 해석한 사람입니다. 형들에 대해서도, 보디발의 아내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비난하고 분노할 수도 있는 처지였지만, 그는 그들에게 분노하는 삶을 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그런 처지 속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였습니다. 인생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해석한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승리의 진짜 힘은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백악관 보좌관으로까지 올랐던 강영우 박사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중학교 때 축구공에 맞아 실명을 한 그에게는 시련에 시련이 겹쳤습니다. 그가 실명하기 1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의 실명을 치료할 희망이 보이지 않자 오래지 않아 그의 어머니도 홧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봉제공장 직공으로 일하던 누나마져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의 앞에는 암울함만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목사님의 심방을 통해 들었던 말씀으로 회복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사회적 냉대와 차별이 여전히 그의 발목을 잡았지만, 목사님이 하신 말씀, "이 고난 이 고통은 장애로 끝나지 않는다. 바울도 그랬다, 바울 역시 참기 어려운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쓰임에 감사하면서 살았고, 결국은 하나님의 큰 쓰임을 받았다. 너도 반드시 하나님의 큰 쓰임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을 힘들 때마다 기억하고 아멘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에게 어떻게 모든 것이 희망으로만 보였을까? 그것은 문제를 바라볼 때 "ㅇㅇ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덕분" 이라는 인생 해석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눈을 가져간 대신에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위대한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부어주셨고, 실패 또한 주님이 주시는 기회라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 앞에도 코로나 문제, 삶의 문제가 맞서고 있습니다. 그 문제들 앞에서 그 문제를 해석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능력을 가질 때, 우리는 그 어떤 문제로부터도 회복될 것입니다.


2.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일곱 살에 노예로 팔려 13년 동안이나 노예와 죄인으로 살아왔던 그가 애굽의 총리라는 위대한 회복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이자 키워드로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9장 2절, 3절, 21일, 22절에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힘들고 지친 노예생활 속에서도, 죄인으로서의 삶 속에서도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들어온 이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늘 자기와 함께 하고 계심을 믿었고 느꼈습니다. 그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어려운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집사님의 고백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욕하고 때리고 심지어 그의 삶을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자라가면서 세상에 대한 불만과 화만 쌓여갔습니다. 자기 삶과 다른 사람의 삶을 비교하면 더욱 화만 났습니다. 세상의 온갖 나쁜 단어들은 모두 자기에게 해당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홧병에 약을 먹고 죽으려고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에 우연히 찾은 교회에서 복음을 듣게 되었고,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연애, 결혼, 삶의 이야기가 아닌 '복음'을 들었습니다.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 망치로 머리를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들었던 '관계 회복, 사랑, 연애, 이혼 가정의 심리치료' 같은 것들이 다 스르르 사라지고 오직 제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여섯 글자만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아신다는, 그리고 벌레만도 못한 나를 위해 아들을 보내시고, 나를 위해 희생하신 피 흘리신 그리스도 보혈의 감격으로 하루하루 기운을 내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복음이요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경험할 때, 회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답이 있다는 것, 다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비전 삼고 오늘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요셉은 어릴 때부터 총리가 되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고들 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성경 창세기 37장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7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9절). 라는 기록 때문인듯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왜냐하면 비전이란 삶을 통해 꾸준히 가지고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그가 그 이후 특히 종살이와 죄인 시절에는 이것에 대한 언급이 없고, 단지 다시 형들을 재회했을 때 잠깐 기억해 내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의 비전이 총리가 되는 것이었다면, 그는 애굽으로 팔려가서 노예생활을 할 때, 그 삶을 견뎌내지 못하고 좌절했을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성추행범으로 고발 당했을 때, 견뎌내지 못하고 좌절했을 것입니다. 그가 그 모든 고난과 굴욕을 견뎌낸 것은, 하나님이 내 인생의 비전이고, 그 비전이신 하나님이 나를 그곳에 두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비전은 총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비전이었던 것입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진정한 비전은, 무엇을 하느냐,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 이곳이 자연히 비전이 되게 됩니다.

대형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시던 분의 이야기입니다. 말씀도 좋고 해서, 많은 유명 교회에서 청빙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좋은 교회들의 청빙을 모두 뿌리치고 작고 초라한, 그래서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던 영주의 교회로 부임하셨습니다. 기회가 되어 그 분께 그 연유를 물었더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이라서 갔다고 하셨습니다. 그 분은 매일 같이 붕어빵을 직접 구워서 교회 건너편에 있는 영주여고 학생들에게 제공을 했었고, 사정이 될 때마다 학생들을 불러다가 삽겹상 파티를 열었다고 합니다. 늘 기쁨과 감사로 섬겼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영주여고에서 지역민을 선도위원을 선임하고자 했을 때, 학교에서 만장일치로 목사님을 원했다고 합니다. 그 분은 선도위원으로서도 존경을 받아서 시로부터 표창장도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비전으로 갖고 기쁨으로 일하면 복이 넘칩니다. 지금도 그 교회는 든든히 세워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주어진 자리에서 감사하며 살려면 ① 하나님이 자신을 이곳에 보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② 하나님이 보내신 땅을 비전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코로나가 아직도 만연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 보다 빨리 안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없고 평안이 없는 것은 우리의 조급함 때문입니다. 조급해 하지 말고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고, 감사하며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레오 톨스토이의 [인생의 세 가지 질문]입니다. 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②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③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그 사람을 위해서 선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오늘 이 세 가지를 이렇게 바꾸어 표현해 보고자 합니다. 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하나님이 주신 바로 지금입니다. ②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③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함께 한 사람들과 하나님이 주신 비전의 땅인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고, 감사와 기쁨으로, 주신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 때, 하나님은 요셉에게 주신 회복을 우리에게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