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2_설교정리_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할 때입니다
○ 말씀전문
[여호수아 6장 1절~5절]
1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3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6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7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8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9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 설교요약
미드웨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에, 일본은 또다른 공격지를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자국과 미국의 중간 지점에 있는 미드웨이를 택했습니다. 여기만 잡으면 전투기의 중간 급유지를 확보하게 되고, 미국 본토 공격의 급소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반면에 미국은 치열한 정보활동을 통해 이 사실을 알고서는 이 급소를 어떻게 지킬지 전략을 짜내고 싸우는 전쟁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의 여리고 전투도 이와 같은 요지였습니다. 이스라엘으로서는 어떻게든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이곳을 점령해야만 했고, 가나안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이곳이 가나안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외벽과 내벽 이중으로 되어 있고, 내벽의 두께만으로도 4차선 도로만큼이나 두껍고 높이가 10m 이상이나 되는 이곳 여리고가 난공불락의 성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 난공불락의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가나안 입성의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여리고가 있습니다. 온 세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두려움에 휩싸여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경제 침체로 인해 살기가 힘들다고들 합니다. 총선을 앞두고 온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습니다.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늘어나고, 자녀문제, 취업문제, 경제문제로 이 한해도 어떻게 보내야 하나 하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신앙생활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암담해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여리고가 무너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 안의 영적인 여리고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1.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갈 때 무너질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7이라는 숫자가 14번이나 나옵니다. 7은 완전수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이 전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쟁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전쟁이고, 영적 전쟁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은 하나님이 함께 계셔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맨 앞에 언약궤를 가지고 나아가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도 하나님은 똑같은 말씀을 하셨었습니다. (여호수아 3장 4절) 이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만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맞딱뜨리고 있는 문제들은 우리 자신의 힘 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들이 많습니다. 이 문제의 여리고 앞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상황에 굴복하고 환경에 굴복하여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네비게이토 성경에서 펴낸 [말씀의 손 예화]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비결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확실하게 붙드는 방법은 ① 듣기 ② 읽기 ③ 공부하기 ④ 암송 ⑤ 묵상이라고 합니다. 이 다섯가지를 다 해야만 하나님을 제대로 붙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비결을 실천해서, 말씀을 붙듦으로써 내 앞의 버티고 있는 모든 여리고가 무너지는 역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2. 침묵하고 기도하며 갈 때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난공불락, 두려움의 여리고 앞에서 침묵하며 성을 돌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쓸데없는 짓을 시킨다고 투덜투덜 댈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런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게 되고, 그 모습을 여리고 백성들이 보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별 것 아니구나 하고 여겼을 것입니다. 소문으로 들었던, 홍해를 가르고 건넌 하나님의 백성,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라며 가졌던 두려움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 우위 선점도 무너졌을 것입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힘든 여리고를 만나면 불평과 불만부터 터뜨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이 좋아하는 반응입니다. 사단은 말 많은 교회가 아니라 침묵하는 교회를 무서워합니다. 말씀과 기도하는 사람들을 무서워합니다. 사회가 불안정하면 루머가 횡횡합니다. 루머가 횡횡하면 사회는 더욱 무질서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문제가 생기면 먼저 입을 닫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문제를 무너뜨려주십니다. 지금이 바로 서로를 비난하거나 불평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 기도할 때입니다. 특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속에서 우리 신동탄지구촌교회 모든 성도들이 매일 정오기도를 드리기를 부탁합니다. 낮 12시에 알람을 맞추어 두고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합시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우한을 위해 기도합시다.
3. 예배자의 양각나팔이 울려퍼질 때 무너질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단어로 7이라는 숫자외에 양각나팔이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원래 성경에는 두 가지의 나팔이 나옵니다. 하나는 은나팔이고, 다른 하나는 양각나팔입니다. 원래 은나팔이 전시에 사용되는 나팔이고 양각나팔은 제사나 축제와 같은 때에 사용되던 나팔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리고 전쟁을 앞두고는 이 양각나팔을 불라고 합니다. 그것은 영적 싸움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입니다, 우리 앞을 가로막은 여리고 문제 앞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예배입니다.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토미 테니는 [다윗의 장막]에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예배가 어떤 예배인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다윗이 사모한 것은 언약궤 자체가 아니라 그 위에 있는 파란 하나님의 임재의 빛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용구 선교사가 겪었다는 실화입니다. 예배를 시작하는데 어떤 자매님이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예배당으로 들어왔습니다.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에 기르던 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찾았는데 못찾고 있던 차에 보니, 예배 시간이 되었기에 예배를 드리러 왔던 것입니다. 목사님이 감동이 되어서 정말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했었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나온 자매님의 눈 앞에, 교회 건너편에 서 있는 소가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 모두 힘들 때 일수록 예배에 대한 사모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에 대한 소중함을 갖기를 바랍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예배드리는 삶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이 예배에 대한 사모함과 열정,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사모함이 있으면 인생의 그 어떤 여리고도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