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22_설교정리_원함이 아니라 필요를 채워가는 인생
○ 말씀전문
[빌립보서 4장 10절~15절]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핌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을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 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 설교요약
아버지가 실직을 하여 살아가기가 빡빡해진 슬기네집이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아빠는 그래도 용기를 내어 아내와 슬기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올해는 가족 모두가 각자 그림을 그려서 서로에게 선물을 주고 받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가족들이 흔케이 동의를 하고는 각자 하고 싶은 선물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엄마는 아빠에게 자동차를 그려서 선물했습니다. 아빠는 엄마에게 예쁜 목걸이를 그림으로 선물했고, 슬기는 자전거와 장난감을 그림 선물로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슬기가 엄마아빠에게 그려준 선물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한 남자와 그 남자의 손을 잡고 서 있는 한 여자, 그리고 그 사이에 서 있는 여자 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엄마아빠는 그 아래에 적혀있는 "함께 하는 우리 가족"이라는 제목을 보고는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가장 큰 행복, 가장 큰 선물은 가족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성탄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무엇을 선물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기입니다. 성탄을 앞두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행복, 주고자 하는 선물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지 본문을 통해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성탄을 맞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은......
1. 자족하는 삶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부의 대표적 인물인 록펠러에게 어떤 기자가 인터뷰를 했습니다. "당신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합니까?" 그러자 록펠러는 "아니요. 만족하지 않습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Just little more (조금만 더)"라고 대답하더라고 합니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가진 자도 이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더 채우려고 욕심을 부리며 불행하게 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많이 가졌다고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욕심 속에서 그것이 채워지지 않음으로 인한 불평으로 불행하게 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추구한 삶의 모습은 자족입니다. 자족만이 만족과 행복을 줍니다. 바울도 처음부터 자족을 안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습을 통해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바울 보다도 더 많은 부와 자유를 가지고 삽니다. 그런데도 바울 같은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이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함 때문일 것입니다. 자족감이 없는 삶은 원함을 채워가는 삶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자족감은 필요를 채워가는 삶을 살 때 얻어집니다. 원함을 채워가는 삶으로는 절대 채워지지가 않습니다. 한 개가 있는 사람은 두 개를, 두 개를 가지게 되면 다시 세 개를 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19절) 라는 말씀대로, 원함이 아니라 필요를 채워가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이 그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이 비결을 깨닫는 성탄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나눔의 삶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원숭이를 잡는 방법이 있습니다. 조롱박의 한 끝을 줄로 묶고 그 반대편 끝을 나무에 묶어 둡니다. 그리고 그 조롱박에 손 하나가 겨우 들어갈 크기의 구멍을 뚫습니다. 그리고 나서 포수는 자신이 먹고 있던 음식물들을 그 속에다 넣어둡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원숭이가 포수가 자리를 뜨면 달려와서 구멍으로 손을 넣어서 한 웅큼을 집어 빼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음식물을 집은 주먹은 구멍에서 빠지지가 않아 곧 붙잡히게 됩니다. 과욕은 우리를 패망케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것을 우리가 나눌 때 기뻐하십니다.
네 번째 동방박사 알타반은 다른 세 명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 탄생을 축복하기 위해 떠나는 길에 동행하려고 예수님께 드릴 루비와 사파이어, 진주를 준비하고 함께 떠났습니다. 하지만 가는 두중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를 외면 할 수 없어서 루비를 팔아서 그를 구제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행을 놓쳤습니다. 서둘러 일행을 따라잡으려고 가는 도중에 생명의 위협을 만난 아이 하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또 그 아이를 외면하지 못하고 사파이어를 팔아서 그 아이를 구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선물인 진주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 갑니다. 그리고 33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게 된 자리까지 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 길목에서 노예로 팔려가게 된 한 아이를 보게 됩니다. 그는 마지막 진주까지도 노예 장사에게 주고 아이를 구해주었습니다. 이제 그는 예수님께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너는 나의 자랑스런 아들이다. 나는 너를 세 번이나 만났으며 세 번이나 경배를 받았다"라고 하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한 일 그것이 내게 한 일이다" 힘든 사람을 돌보는 일, 그것을 예수님을 기뻐하십니다. 나눔의 삶, 그것이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최상의 선물입니다.
3.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99% 사람은 옳은 생각을 하고, 1% 사람만이 옳은 일을 합니다". 나쁜 뉴스들이 신문이나 방송을 물들이고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은 바른 생각으로 삽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마음 아파합니다. 안타까운 사람들의 사연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생각에서 그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머무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도 힘든데, 나도 어려운데 하면서 평생 이웃을 위해 나누지 못하고 사는 불행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바울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행함입니다. 생각한 대로 사는 것입니다. 생각대로 살지 못하면 나중에는 사는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은 선택해서 행동한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갑니다. 생각한 만큼 가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은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동한 만큼만 실제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늘 생각한다고 하나님께 다가간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이웃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한 만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을 위하여 내가 선택하여 행한 만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생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행함입니다. 마음으로만 그치지 말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행함까지 하는 성탄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