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10_설교정리_기쁨의 회복을 위해서 넘어야 할 장애물
○ 말씀전문
[빌립보서 1장 12절~18절]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설교요약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특정한 시기에 한정적인 시간으로 보면 기쁨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있을지라도, 지속적으로 기쁨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더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상태를 가만히 살펴보면 기쁨과 감사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데는 중요한 몇 가지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이 장애물을 극복하고 뛰어넘을 때 우리는 진정한 기쁨의 삶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보여주는 그 뛰어넘어야 하는 장애물은......
1. 환경의 장애물입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은 다른 감옥들과는 다릅니다. 로마 시위대 안에 있는 감옥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황제의 경호를 위한 곳입니다. 바울의 좌우 앞 뒤에 팔을 뻗으면 닿는 곳에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는 그런 감옥이었습니다. 그들은 교대로 근무하겠지만 적어도 개인별로 몇 시간씩, 바울의 입장에서는 24시간 그들과 접촉하고 지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 고급 장교들입니다. 아마도 고관댁 자녀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들과 하루에 몇 시간씩을 아무 말도 없이 지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연히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으면서 근무했을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극단적인 나쁜 환경이라 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이 환경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은혜의 조건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성경 본문에 "도리어"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이 그 상황에 대한 인식을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감옥이라는 곳이 마치 인생이 끝장 난 곳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바울은 그것을 은혜의 조건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 환경의 장애물을 극복할 때 우리는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 고통스런 환경에 놓여있다 여겨지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기쁨은 멀리 도망가지 않습니다.
2. 인간관계의 장애물입니다.
일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살기가 아무리 고달프다 해도, 인간 관계에서 오는 갈등만큼 힘든 것은 없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대부분이 인간 관계의 갈등을 그 이유로 듭니다. 이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먹고 살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부부관계의 갈등 때문입니다. 가장 무섭다는 우울증도 인간 관계에서 옵니다. 바울에게도 그런 아픔이 있었습니다. 한 때는 자신과 함께 일했던 동역자들이 자신을 배신함을 당했습니다. 사람들로부터의 배신 중에서도 가장 힘든 배신은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자신과 가장 가깝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입니다. 그 배신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지구촌교회의 원로이신 이동원 목사님께 목회 중에서 이런 배신, 이런 힘듦을 느끼신 적이 었으시냐고 물었을 때,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하셨답니다. 그럼 어떻게 이겨내셨냐고 여쭈었더니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지'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면 인간 관계의 갈등이 자연적으로 풀리더라고 하셨답니다. 우리는 기쁨을 앗아가는 인간 관계의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포용력을 가질 때 우리는 이 장애물로부터 자유하고, 기쁨의 삶을 회복해 갈 수 있습니다.
3. 죽지 않는 내 자아의 장애물입니다.
환경의 장애물, 인간관계의 장애물 보다도 더 질기고 억센 장애물은 자아의 장애물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자기 중심의 자아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자존심'이라고도 합니다. 이 자아가 우리가 기쁨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자 가장 거대한 장애물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분을 참지 못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도 대부분 이 자아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자아와의 충돌로 힘들어 하고, 분해 하고, 씩씩거립니다. "나를 어찌 보고....". 머리로 생각하는 답은 YES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은 진정한 YES가 아닌 삶을 삽니다. 밖으로는 온갖 포장으로 자신을 합리화 시키면서도, 속에는 흉물스런 개인의 욕심과 야망이 도사리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은 한 때, 누구보다도 자아가 강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이 자아를 십자가 아래에서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기쁨의 삶을 회복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진정한 행복의 가정, 진정한 행복의 부부, 진정으로 행복한 인간관계를 구축하려면 이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다시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 자아의 죽음을 십자가 아래서 이룰 때 우리는 진정한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