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13_설교정리_저수지 같은 인생과 강물 같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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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전문
[빌립보서 1장 1절~2절]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보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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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월드컵 코리아 때 한국을 찾았다가 눈부신 경제 성장과 엄청난 부흥을 이룬 이 나라의 모습에 매료되어,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가 다시 대한민국을 찾았던 다니엘 류더는 그 후에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가 다시 찾았던 이 나라에서 그는 발전된 놀라운 모습 뒤에 숨겨진 아픔도 바라본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적 속에서도 기쁨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안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기적을 이룬 한국 교회와 크리스천, 기쁨을 잃어버린 한국 교회와 크리스천의 모습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기쁨과 감사를 통한 행복을 얻으려고 하나님을 믿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보다는 염려와 걱정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떻게 하면 기쁨을 얘기하고 감사를 노래할 수 있게 될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그 열쇠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삶의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1. 사울을 바울 되게 만드신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울을 제대로 알려면,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을 알아야 합니다. 위대한 바울에게도 사울과 같은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크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사울은 자기가 제일 똑똑하고 잘 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는 그 이름을 버렸습니다. 이름을 바꾼 바울은 ‘작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살아갈 수 없는 미미한 존재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내가 똑똑해서 취직도 하고 승진도 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기억한다면 걱정 속에서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노예 무역선의 선장으로 살아가던 존 뉴턴이 귀국길에 폭풍을 만나 죽을 고비를 만났을 때, 그가 기도하여 4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후, 그는 자신을 도와 주신 하나님을 믿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는 선장 자리를 그만두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은 찬양이 바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양곡입니다. 기쁨과 감사를 노래한 행복감의 고백이지요. 죄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구원하여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면 우리는 감사하고 기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2. 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빌립보서는 옥중 서신입니다. 감옥 안의 삶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합니다. 그것은 그가 그 상황에서도 기쁘고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답을 본문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핵심 단어는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그는 감옥 안에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살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늘 걱정과 근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상황과 환경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걱정을 품에 안고 잠에서 깨고, 걱정을 떨어버리지 못하고 아침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은 걱정이 자리잡고 살기에 좋은 곳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기쁨과 감사를 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리잡아야 합니다. 근심으로 시작한 삶도 예수 안에 있을 때 기쁨의 삶이 됩니다. 예수 안에 있으려면 예배를 회복하고 기도를 회복하고 찬송을 회복해야 합니다. 내 입술에서 찬송이 흘러 나오는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기억하면 우리는 감사하고 기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3. 영적인
은혜와 평강의 비밀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끌어 안아라’라는 책에서 ‘행복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삶의 부산물이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떨 때 행복을 느끼게 되는지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① 정직하게 살았다는 느낌이 있을 때, ②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이 있을 때, ③ 자신이 쓸모 있다고 느낄 때, ④ 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느낄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가 기쁨과 감사로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평강과 은혜를 빌립보 성도들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빌립보 교인들이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에게 해야 할 말씀을 역으로
바울이 이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그에게 나눔의 행복이 충만했기 때문임이 틀림없습니다. 기쁨의 원천은 소유하는 데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쁨의 원천은 나누는 데 있습니다. 인생에는 저수지 같은 인생이 있고, 강물 같은 인생이 있습니다. 저수지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가두기만 합니다. 가두어진 물은 썩기 쉽니다. 반면에 강물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늘 흘러 보냅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늘 싱싱함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을 들은 사람이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 다시
힘을 얻어 일어설 때, 우리가 참을 수 없는 감동과 기쁨을 느끼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나누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저수지 인생을 버리고, 넘치는 기쁨과 행복으로 살아가는 강물 같은 인생을 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