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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04_어머니의 설 준비

서정원 (JELOME) 2019. 2. 4. 22:29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사를 우리가 모시게 된 이후부터 명절이 되더라도 귀성 길에 오르지 않은지 십 수년이 넘었다. 전쟁같은 귀성 대열에 오르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무척 편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뭔가 아쉽고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설날이 되면 그래도 우리 작은 딸이 설을 쇠러 오게 되고 설날 오후가 되면 큰 딸도 시가에서 돌아와 친정이라고 찾아올 것이라서 어제 오후에 아내와 함께 시장을 보러 다녀왔다. 아내에게 어떻든 음식을 조금만 하라고 잔소리를 한 탓에, 마트 한편에 놓여 있는 한과를 사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사지 못하고 그냥 왔다. 시골에 살 때 설날이 다가오면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길은 더욱 바빠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강밥 만드는 때였다. 어머니가 진주 서부시장에 가셔서 밥통을 튀겨 오시면 그 날 밤에는 엄마를 도와 강밥을 만들었다.



커다란 양푼이에 쌀을 튀긴 밥통을 넣고 그 위에다 숟가락으로 물엿을 퍼 부어서 비빈 후에 강밥을 만드는 틀 속에다 부어 넣고는 방망이로 문질러서 고르게 편다. 그리고 얼마간 굳으면 칼로 반듯 반듯하게 자른 후에 아랫 목 따끈따끈한 곳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늘어 놓는다.


그러면 머지 않아 까끌까끌하게 굳은 강밥이라 부르는 쌀강정이 만들어진다. 강밥이 굳어지면 어머니는 커다란 비닐 봉투에 차곡 차곡 넣어서 대바구니마다 가득가득 채워 고방에 갖다 두셨다. 설날 집안 손님들이 오면 대접하고 아들이랑 딸들에게 나누어 줄 선물이다. 물엿이 흠뻑 배인 달콤한 강밥을 수시로 내어다가 먹었는데 너무 많이 먹으면 입 안이 헐어서 고생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쌀밥통 만이 아니라 땅콩을 섞기도 하고 볶은 콩을 넣기도 한다. 집집마다 색다른 맛을 내려고도 한다. 어머니는 깨를 볶아서 깨강정을 만드기도 하셨다. 깨가 풍기는 고소한 냄새가 지금도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한다.



설날이 다가오면 어머니를 도와 두부를 만들기도 했다. 쌀쌀한 기온이 다가오고 가을 걷이가 끝나갈 즈음이면 어머니는 콩타작을 하셨다. 우리가 어릴 때는 아버지가 도릿개를 이용해서 타작을 해 주셨지만 어느 때인가 부터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작대기를 이용해서 콩타작을 하셨다. 콩이 몸에 좋다는 것을 안 선조들의 지혜가 존경스럽다.



그렇게 거둔 콩을 밤이면 호롱불 아래서 선별하셨다. 상 위에 한 줌씩 올려놓고는 손으로 쫙 펴신 후에 하나씩 헤쳐 밀쳐가면서 좋은 콩과 나쁜 콩을 선별하셨다. 콩을 선별하면서 나직막하게 노래하시는 어머니의 편안한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늘 힘들고 고생스러운 삶 속에서도 늘 긍정적으로 사셨던 어머니가 새삼 존경스럽다.



그렇게 소중하게 얻은 콩을 물에 푹 불려서 연하게 만든 후에 맷돌을 이용해서 갈아서 두부를 만드셨다. 맷돌을 돌려가며 콩을 물과 함께 조금씩 부어넣어 가면서 간다. 나는 팔이 아파서 왼팔 오른팔을 연거푸 바꾸어 가면 맷돌을 돌렸지만 어머니는 왼손으로 맷돌을 돌리시고 오른손으로 콩을 떠 넣으셨는데 좀처럼 팔이 아픈 기색을 보이시지 않으셨다. 얼마나 몸에 베었으면 그랬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맷돌로 간 콩을 가마솥에 부으시고 물을 부으셔서는 아버지가 만들어 쌓아 두셨던 장작불로 푹 삶으셨다. 구수한 냄새가 아랫채 부엌으로부터 마당을 거쳐 대문 밖으로 흘러나가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두부 하시나보다며 대문으로 들어오셔서는 어머니를 도와 두부를 만드는 나를 보고 이 집 딸 이쁘다며 놀리신다. 대학 시절에 방학이 되면 시골에 와서는 늘 어머니와 함께 다니며 도와주는 모습을 보고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딸 같다고 하셨었다. A자 모양으로 된 지지대를 솥 가장자리에 걸치고 자루에 푹 끓인 콩물을 퍼 담아서는 큰 주걱으로 콩물을 짜서 자루 속에 남은 건더기는 사랑방 구들막에 이불을 덮어서 숙성을 시켰다. 그것이 콩비지이다. 그리고 걸러진 콩물에 간수를 넣고 휘 저어면 엉기게 된다.그것을 퍼서 물이 잘 빠지는 삼베 자루에 담아 바구니에 담아두면 단단한 두부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두부가 진정한 손두부이다. 그 두부를 이용해서 제사상에 올라가는 탕에도 넣으시고 그 두부로 갈치 조림을 만드셔서 설이라고 인사를 오는 동네 사람들의 술안주로 내어 놓으셨다. 고추장 양념이 들어간 두부 조림이 일품이었다.

또 설날이 다가오면 빠짐없이 준비하셨던 것이 떡국거리였다. 제일 질 좋은 맷살을 불리셔서 아침 일찍 조비마을의 방앗간으로 가셨다. 이른 아침부터 이 동네 저 동네 아주머니들이 떡국가리 뽑으러 와 계셨다가 순서가 늦어지만 조바심을 내곤 했다. 가래떡을 뽑기 전에 찌는 떡 냄새가 방앗간 냄새와 엉켜서 묘한 명절 냄새를 풍겼다. 그러다가 쪄진 떡밥을 기계 위에 붓고는 떡매로 내리 누르면 뜨끈뜨끈한 두 갈래의 가래떡이 받쳐둔 찬물 다랭이 속으로 뱀처럼 흘러내렸다. 그러면 방앗간 주인 아주머니가 쉴 새 없이 가위질을 해서 가져한 고무 다랑이에 담아 주셨다.


어머니와 함께 리어카에 싣고 집에 와서는 빨리 굳도록 바람을 쐬였다. 그리고 한 이틀이 지나면 어머니가 도마와 칼들을 준비해 오셔서 떨썰기를 하셨다. 한석봉이의 어머니가 떡을 썰 듯 어머니의 떡 크기를 고르기 그지 없었지만 나의 떡은 왜 그리 칼에 잘 달라 붙는지 ....



설날 아침에 일어나면 어머니는 가족들을 위해 떡국을 한솥 가득 끓이셨다. 떡국 속에 넣으신 짭짤한 닭고기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닭고기를 곱게 다져서 간장으로 양념을 해 두셨다가 떡국 끓이실 때마다 조금씩 넣어서 끓이셨다. 우리는 그 떡국을 먹고는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께 세배를 드리고,작은댁 당숙부와 당숙부님들을 찾아 뵙고 새배를 드렸었다. 설날 먹고 남은 떡국거리는 비닐봉투마다 담으셔서 강밥과 함께 아들과 딸들 귀가길에 실어 주셨었다.



내일이면 설날이다. 그 어머니는 올 해도 전화로만 새배를 드려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곳에는 형님도 계시고 할머니를 많이 좋아하는 우리 조카 가족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는 설날을 준비하는 것은 모두 형수님의 몫이 되었지만 그래도 형수님 옆에서 눈으로 나마 설빔들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다. 우리 어머니가 늘 부지런히 준비 하셨던 설 음식들이 먹고 싶은 그믐날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