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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18_감

서정원 (JELOME) 2018. 12. 18. 10:12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는데

먼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냄새가 났다.

어디서 나는가를 둘러봤지만 찾지 못했는데

어릴 때 감나무 밑에서 맡았던

감꽃 냄새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나무에 감이 열리기 전에

옅은 노랑색의 감꽃이 열렸었다.

아침 이슬이 내린 길바닥 위로

감꽃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감꽃에서 싱그러운 냄새가 올라왔었다.

밟기라도 하면 터질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고는 그들을 주워서

짚푸라기로 꿰매어 큰방 벽에 걸어두기도 했었다.

마치 월계관을 만든 것처럼 엮었었다.


그 싱그러움이 그리워지는 아침이다.

우리집 장독대 위로 널어졌던

물감나무에서 세수하던 내 세숫대야로도

감꽃이 떨어져 내리던 기억도 난다.

어머니는 그 물감나무에서 떨어져서

장독 사이사이 마다 쌓인 감나무 이파리를

간간히 빗자루로 쓸어내셨는데

한번도 귀찮다는 말씀이 없으셨다.

뒷집 담벼락에 걸쳐서는 침시감이 늘어졌고

뒷뜰에서 사랑채로 내려오는 경사지에는

두리감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별 맛이 없는 감이었다.

침시감은 어머니가

소금을 푼 장독에 담가서 익하셨다.

그 침시감이 단맛을 우려내서

한겨울 밤에 건져 와서 깎아 먹으면 별맛이었다.

설날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그 침시감을 건져서는 이고 시장에 가셔서

팔아서 대목장을 보셨다.

대문밖을 나서면 큰 창감나무가 있었다.

그 창감나무에 달린 홍시를 따먹기도 했었다.


길다란 대작대기의 끝을 낫으로 쪼개고

한뼘 남짓한 곳에 고무줄로 묶어서 만든 장대로

감을 따기도 했었고

따다가 홍시가 따에 떨어져 깨어지면

남은 부분이라도 먹으려고 흙을 털어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장대 끝에 거물망으로 된 보자기를 달아서

홍시를 흔들어서 따기도 했었다.

홍시가 떨어지면서 지붕 함석 위에서

철석하는 안타까운 소리가 추억이 된다.


지난 주말에 어머님에게 들리니

마루에 돌감을 가득 따다 둔 것을 보았다.

요즘은 대부분 단감 아니면 대봉이 대다수인데

오랜만에 돌감을 보게 되니 반갑기 그지 없었다.

내가 하나 입에 넣어 보려고 했더니

형님이 돌감은 완전히 홍시가 되지 않으면 떫다고

굳이 만류를 하셨다.

그러자 형수님이 사위가 갖다 준 것이라며

대봉을 내어 주셨다.

맛있게 먹는 것을 보시고는 비닐 봉지에 한봉지

담아주시며 가져가라 하신다.

언제 뵈도 넉넉하신 우리 형수님이다.


감은 풍성함을 느끼게 한다.

감을 딸 때도 다 따지 않고

까치밥이라며 남겨두라 하셨던

할머니 말씀도 생각난다.

겨우내 먹거리가 없어 헤멜 짐승들을 위한

우리 선조들의 배려심이 넉넉하다.



물질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더라도

늘 마음이 넉넉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오늘날 우리는 늘 허겁지겁 산다.

물질적으로 옛날보다 훨씬 넉넉한데도

늘 부족해 하며 걱정해 가며 사는 것 같다.

아침에 내게 다가온 감꽃 냄새가

오늘은 좀 더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라고 하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