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09_장난감
아이들의 장난감이 다양하다.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에 따라 경제적 부담도 클 것 같다.
문듯 옛 시절에 우리가 놀던 장남감들이 생각난다.
가장 손쉽게 했던 것이 딱지치기 였던 것 같다.
딱지는 못 쓰는 종이를 접어서 만들었다.
신문지가 귀했기에
지나간 교과서를 찢어서 만들거나
두꺼운 포장지를 접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크고 작은 딱지를 보물처럼 여기며 놀았었다.
친구들과 딱지치기를 해서 따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명절날 세배돈을 받으면
구슬을 사서 구슬치기도 하며 놀았었다.
유리 구슬이 보물처럼 아름답게 여겨졌었다.
분유를 먹고 남은 양철통에 구슬을 담아두고
날만 새면 타작마당으로 나가 구슬치기를 하며 놀았다.
구슬을 맞혀서 따 먹기도 하고
구슬을 구멍으로 쳐 넣어서 돌기도 했었다.
또한 벽에 붙여서 떨어뜨려 상대방 구슬을 맞히면
가져가는 놀이도 했었다.
아마도 가장 많이 했던 놀이는 비석치기가 아닌가 싶다.
납짝한 돌을 네모지게 두드려 만들어서는
두 줄을 그어 놓고
먼 곳에 있는 금에 한 편의 비석을 세워두면
가까운 금에서 쭉 늘어서서 비석을 던지기도 하고
머리에 이고 가서 허리를 굽혀 맞히기도 하고
발등에 비석을 올려서는 휙 발로 쳐서 맞히기도
그리고 배에 얹은 채로 허리를 뒤로 재쳐서 가서는
허리를 확 펴서 떨어뜨려 맞히기도 했었다.
혹은 무릎 사이에 끼고 아장아장 걸어가서
무릎을 확 펴서 상대방 비석을 넘어뜨리기도 했다.
내 비석이 상대방 비석을 맞히기는 했는데
상대방 비석이 넘어가지 않아서 안타깝기도 했었다.
도회지에서 싣고 온 거름 더미 속에서 주운
엽전에 비닐을 씌워서 만든 재기차기도 재미있었다.
재기가 고무신과 맨발 사이에 끼어 버릴 때는
운동화를 신은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지금의 놀이들과 비교하면 그 때는 대부분
집 밖에서 노는 것이고 자연에서 구한 기구들이었다.
반면에 지금은 대부분 개인적인 놀이기구이고
집안에서 갖고 놀 수 있는 것이며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다양하고 편리하고 깨끗한 장난감들이긴 하지만
남의 창의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내 아이의 창의력으로 연결될까 하는 아쉬움이 있고
밖에서 뛰어놀면 운동도 될텐데
집안에서 갖고 노는 것은 두뇌에는 도움이 될지라도
육체적인 건강 도모에는 부족함이 있을 듯 해서 아쉽다.
그러나 저러나
아이들이 다양한 놀이로 재미있게 놀면서 컸으면 좋겠다.
이제 곧 일어나 걷는 아이들을 모진 경쟁 속으로 내모는
놀이와 장난감으로부터 아이를 떼어놓는
삭막한 세상이 아니었음 좋겠다.
동무들과 해질녁까지 놀다가
저 쪽에서 엄마가 밥먹으라는 소리에
예 하고 달려가던 내 어린 시절처럼 자라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자유롭게 키워주신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이 그립다.
어머니가 밥 먹어라고 부를 때
뉘었뉘었 넘어가던 낮을 뚫고 찾아오던
그 어스럼의 평온함이 그립다.
그리고는 짙은 밤이 산골을 덮었고
재미있게 논 피곤함 덕분에
우리는 등잔불 아래서
엄마의 따스함을 이불삼아
깊은 겨울밤도 아늑하게 보낼 수 있었다.